다시 아침 - 도종환(1955~)
내게서 나간 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 날은
돌아와 빗자루로 방을 쓴다
떨어져 나가고 흩어진 것들을 천천히 쓰레받기에 담는다
요란한 행사장에서 명함을 자뜩 받아온 날은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찬 물에 차르륵 차르륵 씻겨나가는 뽀얀 소리를 듣는다
앞차를 쫓아가듯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은
초록에 물을 준다
꽃잎이 자라는 속도를 한참씩 바라본다
다투고 대립하고 각을 세웠던 날은
건조대에 널린 빨래와 양말을 갠다
수건과 내복을 판판하게 접으며 음악을 듣는다
가느다란 선율이 링거액처럼 몸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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