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 정호승(1950~)
봄날에 맹인노인들이
경주 남산을 오른다
죽기 전에
감실 부처님을 꼭 한번 보고 죽어야 한다면서
지팡이를 짚고 남산에 올라
안으로 안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감실 안에
말없이 앉아 있는 부처님을 바라본다
땀이 흐른다
허리춤에 찬 면수건을 꺼내 목을 닦는다
산새처럼 오순도순 앉아있다가
며느리가 싸준 김밥을 나누어 먹는다
감실 부처님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맹인들도 아무 말이 없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 오는 길에
일행 중 가장 나이 많은 맹인 노인이
그 부처님 참 잘생겼다 하고는
캔서아다를 마실 뿐
다들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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