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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1967~ )

~Wonderful World 2008. 8. 27. 17:05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1967~ )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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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을 꿈꾸어 보지 않은 자 누구인가. 아무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보기를 꿈꾸어 보지 않은 자 누구인가. 그러나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오는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태양도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고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곳만 알 뿐인데, 하물며 원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어찌 하지 않아도 되겠는가. 그러나 나는 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재빠르게 빛을 뿜으며 홀연히 사라지는 유성(流星)별을. 텅 빈 채 짧게 빛나는 한 획. 이탈한 자의 덜미에 후광으로 눈부신 장엄한 자재(自在)로움을. <박주택·시인>
2008.08.13 00:2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