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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의 집들 -헤르만 헤세 (1877~1962)

~Wonderful World 2008. 9. 17. 01:17

저녁 무렵의 집들 -헤르만 헤세 (1877~1962)

늦은 오후의 비스듬한 황금 햇살 속에서

집들의 무리가 가만히 타오르고,

소중한 짙은 빛깔들 속에서

하루의 마감이 기도처럼 꽃핀다.

서로서로 마음 깊이 기대어 서서,

언덕에서 형제자매처럼 자라고 있다,

배우지 않았지만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처럼 소박하고 오래된 모습으로.

담장들, 회칠한 벽, 비스듬한 지붕들,

가난과 자존심, 몰락과 행복,

집들은 다정하고 부드럽고 깊게

그날 하루의 빛을 반사한다.


방랑시인이자 방황시인 헤세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듯 ‘소박하고 오래된 모습’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예찬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두 번의 끔찍한 전쟁을 겪은 데다 ‘초록도 지쳐 단풍 드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저 언덕 위 ‘저녁 무렵의 집들’은 내게 얼마나 친근한 풍경인지. 스위스의 해방촌쯤일 그 동네 사람들도 아마 공장이나 작은 가게나 운송회사 같은 데서 밥벌이를 할 것이다. 가난하지만 굳건한 삶을 꾸려갈 것이다. <황인숙·시인> 2008.09.17 00: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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