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1941∼ )
우리 살아 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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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주년에 100편의 명시와 명화로 기념 시화집을 엮으며 마음 쓰렸다. 파도 치고 바람 부는 험난한 역사에서도 끝끝내 지켜내야 할 인간과 사회의 이상을 아프게 담고 있는 우리네 시와 그림들. 상처받지 않은 혼이 어찌 사랑을, 희망을 담아내랴. 그래 이 시를 시화집 표제작으로 삼았다. 겨울도 화들짝 깨어나 꽃 계절로 건너뛰는 경칩. 이제 그대, 당신이 꽃필 차례다.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3.05 00:38 입력
파도’-조오현(1932~ )
밤늦도록 불경(佛經)을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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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히말라야 산자락 명상센터. 고지대 헉, 헉 숨 끊길까 무서워 잠 못 드는 밤. 물소리, 벌레 소리, 풍경(風磬) 소리, 적청황백흑 오방 깃발 펄럭이는 소리. 시방세계 가득 바람에 쓸려가는 소리, 소리뿐인데.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도 눈 속으로 하염없이 떨어지며 열흘 밤 내내 묻는 소리. “형, 나 언제 또다시 별로 뜰 수는 있는 거야.” “응, 물 풀 쇠똥벌레 먼지 한세상 바람 따라 살고 돌다 다시 별로 뜰 거야.” 뭇 생령 본디는 몸뚱어리 없는 바람. 먼바다 울음소리에 천경만론 덮고 우주 너머 자유자재 대자대비한 스님 시인 한 소식 한 자락이라도 읽어냈는지.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3.04 00: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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