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성탄절 가까운-신경림(1936~)

~Wonderful World 2011. 1. 12. 01:33

성탄절 가까운-신경림(1936~)

 

살아오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얻었나보다

가슴과 등과 팔에 새겨진

이 아련한 무늬들이 제법 휘황한걸 보니

하지만 나는 답답해온다 이내

몸에 걸친 화려한 옷과 값진 장신구들이 무거워지면서

 

마룻장 밑에 감추어 놓았던

갖가지 색깔의 사금파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교정의 플라타너스 나무에

무딘 주머니칼로 새겨넣은 내 이름은 남아 있을까

성탄절 가까운

교회에서 들리는 풍금소리가

노을에 감기는 저녁

살아오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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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설렘을 잃어버리면서 유년도 청춘도 다 가버렸나 보다.  쓸모가 없는 사금

파리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플라타너스와 하나가 되고 싶어 나무에 이름을 새겨넣던

날들은 가진 것이 없었지만 행복했다.  성턴절은 휘황하고 현란한 장신구들을 벗어놓

고 가난으로 온 세상을 품을 줄 알았던 마음을 겸허하게 받드는 날이다.  노을처럼 부

드럽게 물들어가는 풍금소리를 따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기쁨 아래 가만히 무릎

을 꿇고 싶다.  그것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손택수·시인>

 

성탄절 가까운-신경림(193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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