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화살나무 - 박남준(1957~ )

~Wonderful World 2012. 9. 20. 05:17

화살나무 - 박남준(1957~ )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

화살나무,

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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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고통의 근원인데,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서는. “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 이것이 그가 본 그리움의 막장이다. 악양,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엉덩이를 들이민 그의 집에 가본 적이 있다. 봄날이었으리라, 매화가 피던. 화사한 저녁 햇살 속에 개미떼가 날개를 달고 그의 방 벽 틈에서 먼지처럼 날아올라 어디론가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개미들도 그렇게 가족을 이루고, 또 분가를 하는 것이다. 이동이 끝나면 날개가 떨어진다고 그가 말했다. 날개는 이주의 상징이고, 날개의 떨어짐은 정착의 상징인 셈이다. 적적함이 일용할 양식일 것이나, 그는 모악산으로부터 악양으로 옮겨온 내내 그렇게 흰머리를 길러왔다. 어쩌면 그는 그리움이 뻗어가는 쪽의 길을 놓아버리고, 그 뻗어가는 그리움을 바라보는 것으로 내려놓을 수 없는 그리움과 맞장 떠온 사람이다. 한 그루 화살나무로 서서 그가 들여다본 그리움의 깊이가 그 바닥을 보여주고 있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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