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이후 테오에게-생 레미 요양원에서-박진성
오후에 발작,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간호사들은 대체로 친절하지만
캔버스를 자꾸만 치운다. 팔레트와 물감도
훔쳐간다. 도대체 그림 그리는 일 말고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건지
튜브를 먹으면서 빨간색 물감만
집요하게 빨았다. 입술에 묻은 물감은
피처럼 내장으로 번지고
내 영혼이 측백나무처럼 통째로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았다.
저 나무 뿌리라든가
보이지 않는 물관을 쨍쨍하게 부풀려주는일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다.
떠오르고 싶은 자 떠오르게 하라.
죽음으로도 별에 닿을 수 없다면
내 영혼에 구멍을 내어주마
구멍 틈새로 별빛이 빛날 테고 너는 놀라서
이곳으로 달려오겠지만,
침대 밑에서 자고 싶은 자 침대 밑에서 자게하라 어느날 내가 이곳에서 벌떼처럼
침대 밑을 기어다니더라도 그것은 테오야,
낮은 곳을 그리기 위해 내 영혼을 대어보는거란다.
(중략)
캔버스 안에서 낯선 사내가 나를 보고 있다.
측백나무 숲이란다 테오야......
발작이후 테오에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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