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라 풀아 -강은교 (1945~)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땅 위 거름이란 거름 다 모아
구름송이 하늘 구름송이들 다 끌어들여
끈질긴 뿌리로 긁힌 얼굴로
빛나라 너희 터지는
목청 목청 어영차
천지에 뿌려라
이제 부는 바람들
전부 너희 숨소리 지나온 것
이제 꾸는 꿈들
전부 너희 몸에 맺혀 있던 것
저 바다 집채 파도도
너희 이파리 스쳐왔다
너희 그림자 만지며 왔다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이 세상 숨소리 빗물로 쏟아지면
빗물 마시고
흰 눈으로 펑펑 퍼부으면
가슴 한아름
쓰러지는 풀아
영차 어영차
빛나라 너희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 있는 것들
- 시집 <붉은 강> (풀빛,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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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어디에도 여기에 등장하는 '풀'이 집단적 존재로서의 민중이나 사회적 소외계층을 은유한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김수영의 시 <풀>을 환기한다면, 자연스레 이 시에서 말하는 풀도 연약하지만 굳센 민초들을 뜻한다는 것과 그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현실을 딛고 일어설 것을 염원하며 주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시에서 ‘풀’은 풀이 겪는 고난의 과정보다는 필연적 극복의지와 그 배경이 묘사된듯하다. 풀에다가 대고 직접 응원하듯이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반복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금 비록 하잘것없어 보이는 존재지만 일어서서 ‘빛나라’라고 주문하며 천지간의 너희 세상 만들기를 염원하고 있다.
내일은 중앙집권적이고 엘리트위주의 정치행위를 지양하고 지역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실생활을 변화시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마련된 지방선거일이다. 풀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또 개체로 보면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 끈질긴 천지간의 힘으로 우리가 세상의 푸름을 껴안을 수 있다.
그렇듯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 한 표가 어쩌면 이 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할 수도 있으리라. 특히 젊은이여, 너희 터지는 목청 천지에 뿌려라.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 있는’ 냉소주의자들이여, 영차 어영차 일어나서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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