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황지우(1952~)

~Wonderful World 2013. 5. 21. 22:18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황지우(1952~)

 

 

나는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쓴다.

上記 진술은 너무 오만하다( )

위풍 당당하다( )

위험천만하다( )

천진난만하다( )

독자들은 ( )에 O표를 쳐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위험스러운가( )

얼마나 위험스러운가( )

과연 위험스러운가( )에 ?표 !표를 분간 못 하겠습니다.

不在의 혐의로 나는 늘 괴로웠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감시당하고 있는가( )

당신은 나를 감시하고 있는가( )

독자들이여 오늘 이 땅의 시인은 어느 쪽인가( )

어느 쪽이어야 하는가( ) O표 해주시고 이 물음의 방식에도 양자택일해주십시오.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 왔지만

우리가 우리의 동시대와 맺어진 것은 악연입니다.

나는 풀려날 길이 없습니다. 도저히, 그러나,

한 시대를 감시하겠다는 사람의 외로움의 질량과 가속도와 등거리도 양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죄의식에 젖어 있는 시대, 혹은 죄의식도 없는 저 뻔뻔스러운 칼라 텔레비전과 저 돈범벅인 프로 야구와 저 피범벅인 프로 권투와 저 땀범벅인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와 그리고 그때마다의 화환과 카 퍼레이드 앞에,

----------------------------------------------------------------------------------------------


역사는 세상과 늘 악연이다. 이 악연의 시작이다. 전진하지 못해도 좋다. 걸음은 떼야 한다. 눈감고 지나친 것들이 넘쳐날 때 단순한 물음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우리는 모두,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난쟁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 판단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내 안에조차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 낯선 타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 해도 죄의식이 저절로 증발하는 건 아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