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새우의 맛 - 이근화(1976~ )

~Wonderful World 2013. 6. 1. 23:26

새우의 맛 - 이근화(1976~ )

 

 

머리도 꼬리도 다 같이 벗겨지며

새우는 어렵게 완성된다

분홍 새우지만 보리새우였고

새우는 얼룩말 같고

스프링 같다

여기저기 튀는 걸 먹고 싶지는 않다

빈 깡통을 뻥 차고

골목길을 재빨리 빠져나오고 싶지만

어려운 식사 자리에서는

불편한 전화 통화를 할 때에는

새우의 맛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명절이고

생일이고

기념일이어서

새우를 까고

하루 종일 손가락 냄새를 맡는다

새우와의 이별은 가능한 것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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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검사는 몇 차례 시행되었다. 제 순서를 기다리는 각자에게 할 일이라곤 서로의 증상을 확인하는 것밖에 없었다. 혹시 무슨 알레르기세요? 복숭아를 만지면 끝장입니다. 저는 땅콩이나 호두(견과류라고 하죠)는 입에도 못 대요. 그래요? 저는 비누칠을 하면 손에 반점이 돋아요. 그러나 땅콩도 비누도 최악은 아니었다. 저는 효모 알레르기예요. 쌀이나 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거죠. 빵이나 밥은 물론 맥주도 안 된다는 겁니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저 녀석은 고기만 처먹었겠구나 하던 참이었다. 자네는 새우나 게 알레르기라고? 네! 갑각류를 먹으면 각막이 붓고 두드러기가 생깁니다. 괜찮아! 괜찮아. 육군에서는 먹을 일 없을 거야. 현역 1급! 면제나 방위 판정을 받은 이들이 기쁨을 나누며 홍조를 머금을 때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저 땅을 바라보며 그 위에 육(陸)자를 발로 그려보았을 뿐이다. 신병훈련소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이상하게도 새우깡이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