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세계의 느와르 - 하재연(1975~ )

~Wonderful World 2013. 6. 4. 18:04

세계의 느와르 - 하재연(1975~ )

 

 

내게로 온 불량한 목소리는

우연이었다.


우리의 예산은 늘 빠듯하고

여자들은 조금 더 나쁘거나

남자들은 조금 덜 운이 좋았다.


룰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불공평한 것들이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어디에,

라고 묻는다.


 

 

시간은 빈 술병처럼

금세 비워져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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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의 파워는 막강했다. ‘영웅본색’을 보고 온 몇몇은 성냥개비를 한쪽 입가에 물고 잘근잘근 씹거나 라이터 불꽃을 훅 빨아들이기도 했다. 입술을 자주 데었지만 평화시장의 바바리 상점은 때아닌 호황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비 오는 어느 날, 갱단의 아지트를 기습하기로 결심한다. 도박판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뚫어야 할 관문이 너무 많다. 계단 뒤, 창문 아래 저격수가 숨어 있을 것이다. 검지와 엄지를 곧게 편 다음 나머지 세 손가락을 오므린다. 그 상태로 살며시 손을 귀 가까이에 가져간다. 숨을 고르고 발걸음을 뗀다. 기척이 있으면 즉시 팔을 내뻗어 탕탕탕! 하나 둘 쓰러뜨리며 전진 또 전진. 아지트가 코앞이다. 바바리 깃을 세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자세도 낮추었다. 삐뚜름하게 몸을 틀고 왼발 오른발을 꽈배기처럼 번갈아 내디딘다. 신중한 접근이다. 문을 발로 세게 찬다.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곧게 뻗은 오른손 팔목을 왼손으로 지탱하며 45도 90도 135도 방향으로 차례로 돌린다. 꼼짝 마! 눈앞의 적들이 굳은 표정이다. 냉혹한 청부 살인자가 등 뒤에서 총부리를 겨누며 말한다. “자네, 그렇게 수업 듣기 싫어하더니만, 결국 돌았나?” 비겁한 한 방이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