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니 왕
- 기오르기오스 세페르리스(1900∼71)

햇살 내리쬐는 쪽은 길고 드넓게 펼쳐진 해변,
그리고 빛, 거대한 벽에 박힌 금강석들을 때리는.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야생 비둘기들 사라졌다.
그리고 아시니 왕, 우리가 찾아 다닌 지 이제 2년인 그가,
안 알려진 채, 모두에게 잊혀져 심지어 호메로스한테도,
딱 한 단어 ‘일리아드’에 남을 정도로 불분명하게
내팽개쳐져 있었다 여기 그 황금의 매장 가면처럼.
네가 만졌지 그것을, 기억 나 그 소리? 속이 비었었다 빛 속에
마른 항아리, 파낸 땅 속 그것처럼.
똑 같은 소리,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의 노가 냈던.
아시니 왕, 공허, 가면 아래의
도처에 우리와 함께 도처에 우리와 함께 있는 그 이름.
아시니 왕…. 아시니 왕….
(…)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광과 현대 수난을 다룬 시인. 엘리엇 『황무지』와 조이스 『율리시즈』식 신화 해석 방식을 겹치는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이 시는 잃어버린 고대 고유명사 ‘아시니 왕’을 찾는 과정과 시 창작 과정을 일치시키면서 시가 ‘공(空)으로 짠 의미 그물’임을 보여준다. 1963년 오든·네루다·베케트 등을 제치고 노벨상을 받았는데, 놀랄 일이 아니다.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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