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포에 들다 - 천양희(1942~ )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을.
폭포 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 박수 소리 같은 - 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남성의 시적 감성이 공간적이라 지배-폭력적이고, 여성의 그것이 시간적이라 생애-인고(忍苦)적인 시절의 대가 여성 시인이 공간을 제대로 만나니, 그것은 자연과 죽음과 아름다움이 구분 불가의 하나인, 광경과 소리가, 이승과 저승이 하나인 공간이다. ‘시절’은 끝날 수 있으나 길이를 늘일 수 없는 시간의 ‘두께를’ 더하는 일은 요란 굉장 공간의 작금 시문학에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이고, 이 시인이 계속 맡을 수밖에 없다.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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