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활 - 강정(1971~ )

~Wonderful World 2014. 12. 22. 08:13

활 - 강정(1971~ )


시간이 이 세상 밖으로 구부러졌다

시여, 등을 굽혀라

고양이 새끼가 운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운다

급류를 삼킨 노을이

노을이 아빠가 되려고 운다

떠돌다 지친 다리가

다른 인간의 눈이 되려고

멀고 먼 샅으로 기어올라온다

빛이 어디 있는가

뒤집어진 어둠의 골상을 판독하려

한나절의 시름이 그다지 깊었다

못 나눈 정을 전염시키려

낮 동안 오줌보는 그토록 뾰로통했다

혈관에 흐르는 오래된 문자들을

고양이의 꿈이 딛고 지나는 이마 위에 처발라라

팔다리는 공기가 멈춘 나무

낭심 아래엔 죽은 별 무더기

구부러진 어깨를 펴라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겨라

( … )


이 시인은 만년의 리어왕보다 더 불행하다. 같은 자연-인간의 본질적 왜곡을 보았으되, 리어왕은 광기 속으로 탈출하였으나 그는 멀쩡한 절망을 택하고, 그는 무너지는 세계(관) 너머 무너짐 자체를 활로 버티고 그물로 건져 올린다. 결과인 절망을 드러내는 과정-실패의 미학 외에 전제인 절망을 극복하려는 도구의 미학이 있고, 그에게는 사랑의 극한 절망인 포르노조차 그물코 감이고, 잦은 명령형이 그 때문이고, 그는 아직도 독보적이다.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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