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 강정(1971~ )

시간이 이 세상 밖으로 구부러졌다
시여, 등을 굽혀라
고양이 새끼가 운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운다
급류를 삼킨 노을이
노을이 아빠가 되려고 운다
떠돌다 지친 다리가
다른 인간의 눈이 되려고
멀고 먼 샅으로 기어올라온다
빛이 어디 있는가
뒤집어진 어둠의 골상을 판독하려
한나절의 시름이 그다지 깊었다
못 나눈 정을 전염시키려
낮 동안 오줌보는 그토록 뾰로통했다
혈관에 흐르는 오래된 문자들을
고양이의 꿈이 딛고 지나는 이마 위에 처발라라
팔다리는 공기가 멈춘 나무
낭심 아래엔 죽은 별 무더기
구부러진 어깨를 펴라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겨라
( … )
이 시인은 만년의 리어왕보다 더 불행하다. 같은 자연-인간의 본질적 왜곡을 보았으되, 리어왕은 광기 속으로 탈출하였으나 그는 멀쩡한 절망을 택하고, 그는 무너지는 세계(관) 너머 무너짐 자체를 활로 버티고 그물로 건져 올린다. 결과인 절망을 드러내는 과정-실패의 미학 외에 전제인 절망을 극복하려는 도구의 미학이 있고, 그에게는 사랑의 극한 절망인 포르노조차 그물코 감이고, 잦은 명령형이 그 때문이고, 그는 아직도 독보적이다. <김정환·시인>
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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