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심해에 내리는 눈  - 이수정(1974~ ) 

~Wonderful World 2018. 7. 27. 16:51
심해에 내리는 눈  
-이수정(1974~ )  
 

바다엔, 한 생애를  
지느러미에 맡기고 살던 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인 채로 죽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는데,  
흩어진 사체가 고운 눈처럼 내린다고 하는데,  
구만 리 날고 싶은 눈 먼 가오리  
햇빛이 닿지 않는 바다 밑에 엎드려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던 마음들을  
펼친 날개에 고이 받고 있다 하는데.  
 
 
물고기의 수평선은 어떤 모습일까. 그 너머는? 넓고 깊은 바닷속에 인간의 그물에 걸리지 않은 물고기들이 고운 눈처럼 내리는 모습은 환상인 듯 아름답다. 나는 수평선을 지평선으로, 바다를 하늘로 자꾸 잘못 읽는다. 그리로 멀어져 간 또 한 사람을 생각한다. '눈 먼 가오리'는, 붕(鵬)새가 되어 저 장천에 오르는 『장자』의 곤(鯤)을 닮았다. 부디 잘 가시라.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