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비닐 우산-신동문(1928~93)

~Wonderful World 2019. 4. 10. 10:10
비닐 우산
-신동문(1928~93)
 
비닐 우산,
받고는 다녀도
바람이 불면
이내 뒤집힌다.
대통령도
베트남의 대통령.
 
비닐 우산,
잘도 째지지만
어깨가 젖는다.
믿을 수가 없다.
대통령도
브라질의 대통령.
 
비닐 우산,
흔하기도 하지만
날마다 갈아도
또 생긴다.
대통령도
시리아의 대통령.
 
(…)
 
기지에 찬 풍자와 냉소의 시. 매 연의 끝 행은 험한 시선을 피하기 위한 장치였으리라. 한·일회담 반대운동과 비상계엄으로 살벌하던 1964년의 작품이다. 시인은 생애의 후반 시를 내려놓고 침술로 사람들을 살렸다. 어려운 시간이었으나 우리가 무슨 장한 일을 이룬 건 아직 아니다. 승객들은 지쳐 있고 밖은 늑대들 울음소리 흉흉한데 갈길은 멀고 차는 섰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구한말은 적어도 나라가 분단 상태는 아니었다. 자족과 방심은 이르다. 더구나 4·19가 1년도 안 되어, 10·26은 두 달이 채 안 되어 쿠데타로 이어졌던 것이 엊그제의 악몽 아닌가. 선한 지혜와 용기의 ‘믿을 수 있는’ 운전자를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 신명의 가호가 있기를.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비닐 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