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약속- 천상병(1930~93)

~Wonderful World 2019. 4. 11. 10:30
약속
- 천상병(19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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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黃土)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저세상으로 가서 그는 이승에서의 삶이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귀천(歸天)’) 했다.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에서의 삶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어떤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커서 가난과 죽음을 덮고도 남는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