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서는 아이
- 이태진(1972~)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왜 그리도 익숙해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에 선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침묵으로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안다,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결코 금수저나 은수저가 아님을. 또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적 환경도 진심은 아닐지라도 결국 인정하며 적응해야만 한다. 그러나 심리적 위축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무엇을 의미”하는지 안 이후의 패배적 숙명으로 번역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아니 그러지 말라는 당위의 세계는 여전히 막강하다. 여기서도 전복(顚覆)을 읽어낼 수 있다. 뒤집으면 맨 뒤가 맨 앞인 셈이다. ‘침묵’은 그걸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인덕·시인>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뒤에 서는 아이
- 이태진(1972~)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왜 그리도 익숙해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에 선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침묵으로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안다,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결코 금수저나 은수저가 아님을. 또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적 환경도 진심은 아닐지라도 결국 인정하며 적응해야만 한다. 그러나 심리적 위축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무엇을 의미”하는지 안 이후의 패배적 숙명으로 번역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아니 그러지 말라는 당위의 세계는 여전히 막강하다. 여기서도 전복(顚覆)을 읽어낼 수 있다. 뒤집으면 맨 뒤가 맨 앞인 셈이다. ‘침묵’은 그걸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인덕·시인>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뒤에 서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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