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활
문병을 다녀오는 길에 새 옷을 사기로 한다
벽장 속 셔츠들은 옷깃이 바랬고
오늘은 사야한다 새로운 흰 것을
여름의 아웃렛 비어있는 리넨들은
간소하고 청결한 라이프 스타일을 권하고
너는 이제 그런 생활을 한다
얇은 옷 한 벌과 주머니 두 개로
마당 없는 병원 벤치에 간간이 내리는
미적지근한 볕을 받으며 너는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좋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운이 좋았다, 좋다
라는 말을 번갈아 고르고
오늘도 너를 찾아오지 않는
우리를 여전히 좋아하는 척하면서
어떤 얼굴은 하얗고
어떤 사람은 점점
창백해져 가는가
하얀 것이 하얀 것을 더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구겨져갔다 나는
새로 산 셔츠를 벽장에 건다
버릴 옷들이 다시 버릴 옷으로 남겨진다
뿌옇게 젖어가는 깃과 깃
땀방울은 매일 차가운 목덜미를
투명히 흘러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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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것, 사람에 대해 욕을 하는 기분으로 입을 다물고 읽고 썼던 적이 있다. 조롱과 분노는 조롱과 분노로 끝났다. 이러려고 시를 쓰나. 그렇지만 그것도 시였고 나는 나였다. 그렇게 시는 시, 나는 단지 나였을 뿐이었다.
시는 단지 시로 있을 수 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만으로 머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에게 ‘나’가 있다면, 문학에게 문학이 있다면 충분한가. 혹은 진정성, 진실이라면, 문학은 충분히 문학이 될 수 있나. 시를 쓰는 것은 어떻게 진실한 일이 되는지. 그럼 진실한 문학을 했던 그 사람들은 대체 어째서.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문학에 관한 유용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을 읽고 쓰는 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 가볍고 쓸모없다면, 가볍고 쓸모없는 것이다. 그 무용함 뒤에 한 문장으로 덧붙여지는 유용한 역설을 나는 쓸 수 없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 하자고, 함께 시를 쓰고 살자고 얘기해주신 임솔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이 계셔서 시를 쓰고 함께 사는 일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긍정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믿음으로 걱정하고 보살펴준 부모님, 동생에게도 오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내가 지닌 모든 이야기의 독자가 되어 주는 지원에게 온 기쁨을 보낸다. 함께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연습 없이 쓰고, 살 수 있었다.
문학으로 던지는 물음 뒤에 숨지 않겠다. 문학에게만 진실을, 폭력을, 무지를, 아름다움을 내맡기지 않겠다.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시를 쓰고 싶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 조용우씨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시를 쓰고 싶다"
시는 단지 시로 있을 수 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만으로 머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에게 ‘나’가 있다면, 문학에게 문학이 있다면 충분한가. 혹은 진정성, 진실이라면, 문학은 충분히 문학이 될 수 있나. 시를 쓰는 것은 어떻게 진실한 일이 되는지. 그럼 진실한 문학을 했던 그 사람들은 대체 어째서.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문학에 관한 유용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을 읽고 쓰는 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 가볍고 쓸모없다면, 가볍고 쓸모없는 것이다. 그 무용함 뒤에 한 문장으로 덧붙여지는 유용한 역설을 나는 쓸 수 없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 하자고, 함께 시를 쓰고 살자고 얘기해주신 임솔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이 계셔서 시를 쓰고 함께 사는 일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긍정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믿음으로 걱정하고 보살펴준 부모님, 동생에게도 오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내가 지닌 모든 이야기의 독자가 되어 주는 지원에게 온 기쁨을 보낸다. 함께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연습 없이 쓰고, 살 수 있었다.
문학으로 던지는 물음 뒤에 숨지 않겠다. 문학에게만 진실을, 폭력을, 무지를, 아름다움을 내맡기지 않겠다.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시를 쓰고 싶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 조용우씨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시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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