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리에서’ - 박형준(1966~ ) ‘파도리에서’ - 박형준(1966~ ) 여자는 내 숨냄새가 좋다고 하였다. 쇄골에 입술을 대고 잠이 든 여자는 죽지를 등에 오므린 새 같았다. 끼루룩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파도 속에서 물새알들이 떠밀려 왔다. 우리가 밤새 품은 물새 알들이 쩍, 한 우주를 깨고 있습니다. 이네들도 아나 봅니다. 오래전..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09.01.18
‘연애의 법칙’ - 진은영(1970∼ ) ‘연애의 법칙’ - 진은영(1970∼ )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09.01.18
‘구두 수선소를 기리는 노래’ - 정현종(1939∼ ) ‘구두 수선소를 기리는 노래’ - 정현종(1939∼ ) 거리에 여기저기 있는 구두 수선소,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평화롭다. 마음은 넘친다― 바라보아도 좋고 앉아 있어도 좋다. 작아서 그럴 것이다. 낮아서 그럴 것이다. 그것보다 더한 성소(聖所)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비..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09.01.18
‘시래기’ - 도종환(1954∼ ) ‘시래기’ - 도종환(1954∼ )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09.01.18
‘와유(臥遊)’ - 안현미(1972~ ) ‘와유(臥遊)’ - 안현미(1972~ )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 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09.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