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마포, 1996년 겨울

~Wonderful World 2008. 3. 7. 01:58

'마포, 1996년 겨울' -

                      장철문(1966~)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저 눈부신 난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내가 아껴온 몇채의 폐사지와
겨울숲,
깃을 치는 작은 새의 기억을 두고
밤 사이 허리 잃은 육교
저 층계로
아무일 없는 듯 걸어올라가
가뿐한 한걸음 내딛고 싶다.
오랜 상처와, 내가 걸어온 길의
코스모스였던 사유들, 발목이었던
고통들, 바람의 출처였던 비애들
신발로 벗어두고,
내어딛을 때의, 사타구니의
시큰함마저
천연덕스럽게 내려다보며,
한 우주도 너끈히 들어갔다 나올
저 허황함 속으로
퇴근길의 특별할 것 없는 귀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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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핫이슈시(詩)가 있는 아침퇴근길, 밤 사이 공사로 허리가 사라진 육교의 층계를 본다. ‘내’가 아껴온 기억들과 오랜 상처와 사유들, 바람의 출처였던 비애들. 아무일 없는 듯 걸어올라가 저 눈부신 난간에 신발로 벗어둔다면! 허공을 밟을 때의, 사타구니의 시큰함마저 천연덕스럽게 내려다보며 가뿐한 한걸음 내딛는다면! 가슴 미어져 올라오는 젊은날의 고뇌와 시큰함이 잘 느껴지는 시.

<박형준ㆍ시인>  2008.03.06 19: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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