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박지원(1737~1805) 

~Wonderful World 2008. 2. 7. 23:46
 

‘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박지원(1737~1805) 


어허, 수염발이


희끗거리네.


키는 작년과 다름없는데,


얼굴은 해마다 달라지는군.


그래도 설날은


어려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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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설날엔, 서울에 돈 벌러 간 누나가 새 옷을 한 아름 가져왔지. 미싱사 누나가 직접 미싱을 돌려 만든 ‘고리땡’ 바지와 ‘도꾸리’. 누나가 오면 밤새도록 옷가지들에 몸을 재어 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지. 오 놀라워라, 대문호도 설날에는 천진한 동심으로 돌아가는구나. 나이 든 사람도 설이 되면 즐거워 수염이 희끗거리는데도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는구나.


<박형준·시인>     2008.02.05 18:23 입력



‘꽃잎’-조용미(1962~)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바람의 힘을 빌려 몸을 날리는 꽃잎처럼

뛰어내리고 싶었다

허공으로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봄 저물녘의 흰 꽃잎들

삶이 곧 치욕이라는 걸,

어떤 간절함도

이 치욕을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걸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붉은 땅 위로 내리꽂히는 장대비처럼,

어둑한 겨울숲에서 혼자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는

동백의 모가지처럼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발 아래 까마득한 것들 다 공중으로

불러들이고 싶다

역류하는 것들의 힘으로

떨어지는 나는 폭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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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치욕이지만, 어떤 간절함도 치욕을 치유해주진 못하지만 봄 저물녘의 흰 꽃잎들은 그래도 삶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허공에서 나서 허공에서 죽어가는 꽃. 땅이 눈에 어른거려도 결코 땅에 항복하지 않고 절정의 순간 바람의 힘을 빌려 지구에서 뛰어내립니다. 치욕을 다 인내한 저 꽉찬 침묵의 비상, 그 눈부신 역류야말로 눈물겨운 삶의 의지가 아닐까요?


 <박형준·시인>   2008.02.04 20:43 입력


마디, 푸른 한 마디’-정일근(1958~ )


피릴 만들기 위해 대나무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노래가 되기 위해 대나무 마디마디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린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하다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눈부처로 모신 내 두 눈 보면 알 것이다

고백하기에 두 눈도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샘에 얼비치는 눈물 흔적만 봐도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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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나이가 자신의 눈동자 속에 오로지 한 여자만을 담고 싶어한다. 그 간절함을 어떻게 전할까. 좋은 선물을 하고 나의 가장 잘난 모습을 자랑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피리의 노래는 대나무의 푸른 한 마디에서 나왔듯,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을 바쳐야 하리. 나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저 낭떠러지에 핀 꽃을 따서 가만히 당신의 손에 쥐여드리는 일.


<박형준·시인>   2008.01.27 20:18 입력



‘술꾼’-체사레 파베세(1908~50)


술꾼은 노래하지 않고 줄곧 길을 걷는다

유일한 장애물은 허공 저 너머에

바다가 있는 것이 다행이다

술꾼은

평온한 걸음걸이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모습은

사라진 채 여전히 바다 밑바닥에서도 걸어가리라

밖에는 여전히 햇살이 비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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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예술가)’은 죽음을 향한 길에서도 삶의 가장 깊은 바다 밑을 꿈꾼다. 쉽사리 노래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몸 전체로 자신을 세계 속에 열어놓는다. 파베세는 “자살은 수줍은 타살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수줍게’ 생을 마감한 이탈리아 시인. 그의 번역 시집 『피곤한 노동』은 절판된 지 오래다. 이성복은 그의 시가 죽을 정도로 좋다고 했는데, 도대체 언제 복간될는지.


<박형준·시인>   2008.01.22 20:56 입력


‘코코로지(CocoRosie)의 유령’-황병승(1970~ )



지금은 거울 속의 수염을 들여다보며 비밀을 가질 시기


지붕 위의 새끼 고양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희고 작은 깨끗한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겨울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나는 어른으로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른으로서


봄이 되면 지붕 위가 조금 시끄러워질 것이고


죽은 물고기들을 닮은 예쁜 꽃들을 볼 수가 있어


봄이 되면 또 나는 비밀을 가진 세상의 여느 아이들처럼


소리치며 공원을 숲길을 달릴 수 있겠지


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은 겨울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부끄러움을 가질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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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넘치는 게 슬픔이지만 어른들의 슬픔은 신문에서, 방송에서, 회사 사무실에서 떠들어대며 객관화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슬픔이다. 그들은 슬픔을 나누고 곱하고 빼고 더하며 슬픔의 양을 잰다. 거울을 비춰보면 수염이 가득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자신만의 슬픔을 비밀스럽게 간직하려는 어린이이다. 어린이들의 슬픔은 유리창을 맑게 닦아내는 세상의 창이다.


<박형준·시인>   2008.01.21 21:10 입력



‘마을에 연기나네’-이시영(1949~ )


 부탄의 한 산골마을 외딴집에 아침 연기 오른다

 밤새워 바람의 길을 따라 해발 7천 미터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온 검은목두루미 한 쌍이 그 집앞에 사뿐히 내린다


 날개에 봄 햇살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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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 저 새들처럼 생활을 저어갈 날개에 힘이 생길 텐데, 오늘 아침도 토스트로 간단히 때워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도시 음식이 세련되긴 해도 ‘집밥’에는 미치지 못한다. 저 마을의 아침 연기가 피워내는 정경 속에는 자신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남을 채워주는 사랑이 있기 때문. 어머니는 지금 부엌의 매운 연기 속에서 아침밥을 짓고 계시겠지.


<박형준·시인>   2008.01.20 19:14 입력



‘공양’-안도현(1961~ )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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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데에도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을 공양하는 존재들이 있다. 싸리꽃을 피우려고 산(山)벌의 날갯짓 소리가 일곱 근이나 들었다니. 반가운 손님처럼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가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오랏줄 칠만구천 발을 내려뜨렸다니.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의 공양으로 우리의 삶이 꽃피어나는 것이니.


<박형준·시인>   2008.01.17 20:12 입력



‘사아아디의 장미꽃’-마르스린느 데보르드-발모르(1786~1859)



오늘 아침 당신에게 장미꽃을 갖다 드리고 싶어

꼭 매어진 허리띠에 장미꽃을 따 넣었습니다.

매듭이 너무 죄어서 더 꽂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땄습니다


그러나 매듭이 탁 터져 장미꽃들은 날아갔습니다.

바람을 타고 바다쪽으로 아주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파도는 장미꽃으로 붉게 보였습니다.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저녁은 아직도 내 옷에서 장미꽃의 향기가 맴돌고 있습니다.

내게서 나오는 장미꽃의 이 향기로운 추억을 맡아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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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시인 사아아디에게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시. 친구들에게 가져다주려고 장미나무에 가서 옷자락에 장미꽃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만 장미꽃의 향기에 도취되어 옷자락이 손에서 빠져나갔다는 것. 당신, 오늘 저녁은 노을을 유심히 보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옷에서 향기가 나거든 그녀가 아침부터 당신을 위해 꽃을 딴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세요.


<박형준·시인> 2008.01.16 20:24 입력



‘연인들 3- 몸속의 몸’- 최승자 (1952~ )


끝모를 고요와 가벼움을 원하는

어떤 것이 내 안에 있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부풀어 오르고,

 

다시 가라앉았다

부풀어 오르는,

무게 없는 이것,

이름할 수 없이 환한 덩어리,

몸속의 몸, 빛의 몸

몸속이 바다 속처럼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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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를 읽으며 저는 문학청년에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안의 고요와 가벼움까지 반죽해 빵처럼 환하게 부풀어 오르는 영혼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시인이 시인을 건너게 해주는 가교가 된다는 건 얼마나 무섭도록 아름다운 일일까요? 부서지기 쉽지만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연인이 되고 서로에게서 사랑을 배우며 한 세상을 건너갑니다.


<박형준·시인>   2008.01.14 20:20 입력



‘여행자’-최금진(1970~ )



그의 구두 뒤축에는 지구의 자전이 매달려 있다


호수에 날은 저물고 웅웅 편서풍이 분다


멀리서 지평선이 언덕을 내려놓고 달을 들어올린다


여행용 컨테이너처럼 그의 몸은 조립식


그는 몸을 펼쳐 텐트를 친다


발목사슬에 달고 질질 끌고 온 세월은


문밖 기둥에 백기(白旗)처럼 걸어놓는다


여기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조개를 건져먹고


어느날은 패총처럼 굳어


자신의 묘비가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편지를 쓴다


하이에나처럼 낄낄거리는 꽃들


그 먹이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몸을 눕힌다


무너져오는 어둠의 네 귀퉁이를 손발로 들어올리고


안녕,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는 몸을 끄듯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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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렝 드 보통의 말대로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여행에는 ‘나는 왜 여행을 떠나려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행이란 정해진 목적지가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애초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묘한 어긋남의 연속이 매력이다. 호수와 지평선과 달과 편서풍까지 자신의 육체처럼 조립하는 한 여행자의 시. 자신이 자신에게 쓰는 저 묘비명의 찬란한 고독.


<박형준ㆍ시인>   2008.01.11 19:00 입력 / 2008.01.11 19:00 수정




‘유명해진다함은’-보리스 빠스쩨르나크(1890~1960)



유명해진다함은 아름다운 것도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다.

기록을 남기거나 쓴 글에 연연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창작의 목적은 자아의 표출이니

허세나 출세가 아닌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수치일 뿐.


그러나 헛된 명망 없이 살아야 하느니,

미래의 부름에 귀기울이고

우주 공간의 사랑과 하나가 되기 위해 끝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종잇장이 아닌 운명 속에 여백을

남겨야 한다.

삶이라는 하나의 절(節)과 장(章)이

책의 여백으로 구분되듯이.


이름없음에 젖어들고

그 속에 발자국 또한 숨겨야 한다.

안개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대지가 그 속에 은신하듯이.


타인들이 걷던 삶의 흔적을 따라

한 걸음씩 너의 길을 걷되,

너 자신 승리와 패배를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외면하지 말라.

그러나 생명력 넘치는 삶은

끝내 그렇게 살아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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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싱거울지도 몰라, 명망을 바라지 않고 종이에 글을 쓰는 건. 민망할지 몰라, 실연과 고통을 다시 떠올려보는 건. 하지만 종이에 글을 쓰는 건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해. 자신의 하찮음 속에서 참된 자아가 말하기 시작하면 그건 일대 사건이야. 우주 공간의 사랑과 하나가 되는 거야.

<박형준ㆍ시인> 2008.01.09 20:19 입력



‘행성’- 파블로 네루다(1904~73)



달 위에는 물돌이 있을까?


거기엔 금물이 있을까?


가을은 무슨 빛깔일까?


날들은 서로 부딪칠까


그들이 난발처럼


온통 풀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게


--종이, 와인, 손, 시체들--


지구에서 저 먼 곳으로 떨어졌을까?


거기서는 익사한 사람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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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는 순간 세계는 시적인 꽃들로 가득 찬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엮어낸 저 행성을 보라. 물로 된 돌이 있고 금으로 된 강물이 흐르는 행성에 지구에서 거꾸로 떨어진 사물이 넘친다. 당신이 글을 쓰던 종이도, 사랑을 나누던 와인도, 따뜻한 손도, 게다가 시체들까지 저 먼 곳으로 떨어져 간다. 과연 호기심은 우주의 문.


<박형준·시인> 2008.01.04 19:11 입력 / 2008.01.05 05:44 수정



‘강’- 이성복(1952~ )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조각이


미지(未知)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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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희망’ 그리고 ‘절망’이라는 낡은 단어들을 가지고도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니. 시인이란 단어 몇 개만 가지고서도 천변만화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다. 누구나 강물 위에 떠가는 작은 마분지 조각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니. 우리는 사소한 존재이지만 언제나 인생이란 강물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쓸쓸하고 아프더라도 그 기척은 아름답다!


<박형준·시인>   2008.01.03 19:38 입력

‘따스한 것을 노래함’-박목월(1916~78)


마치 한 개의


돌복숭아가 익듯이


아무렇지 않게 열(熱)한 땅기운


그 끝없이 더운


크고 따스한 가슴……


늘 사람이 지닌


엷게 열(熱)한 꿈으로 하여


새로운 비극을 빚지 말자.


자연처럼 믿을 수 있는


다만 한 오리 인류의 체온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에


의지하라.


의지하여 너그러이 살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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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새로운 비극을 빚지 말게 하소서. 이제는 우리 모두가 각자 서로의 자연이 되게 하소서. ‘나’와 ‘너’가 나무처럼 의지하여 한 올의 체온과 그 속에 흐르는 핏줄로 연결되어 너그럽게 살게 하소서. 서로가 서로의 땅기운이 되게 하소서. 깊은 산속에서 한 개의 돌복숭아가 익어가듯이 서로의 크고 따스한 가슴속에서 영글어 가는 꿈을 노래하게 하소서.


<박형준·시인>

 

◆필자 약력=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하여 이야기하련다』 『춤』 등 다수 ▶동서문학상·현대시학작품상 등 수상

2007.12.31 18:07 입력 / 2007.12.31 18:17 수정


‘1년’-천양희(1942~ )



작년의 낙엽들 벌써 거름 되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작년의 씨앗들 벌써 꽃 되었다


내가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후딱, 1년이 지나갔다


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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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란 말 속에는 어떤 나이테가 들어 있는 듯합니다. 낙엽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씨앗을 틔우고 마침내 꽃과 꽃밭이 되지요. 바람도 풀도 씨앗도 꽃밭도 몸속 어딘가에 나이테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돌아보면 후딱 1년이 지나가지만 우리들의 몸속에는 그 순간이 빚어낸 나이테가 하나 늘어 있겠지요. 당신, 가슴에 손을 대고 1년이란 시간이 만들어낸 결을 느껴 보세요.


<박형준·시인>   2008.02.10 19:31 입력


‘소곡(小曲)’- 박목월(1916~78)


불이 켜질 무렵

잠드는 바람같은

목마름


진실로

겨울의 해질 무렵

잠드는 바람같은

적막한 명목(暝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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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뭉클하다. 불이 켜지는 시간과 어둠이 내리는 시간 바로 해질 무렵의 황혼시간을 그것도 겨울의 해질 무렵을 이 시는 우리들 마음 안에 소리 없이 부려 놓는다. 그러나 겨울은 계절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마음의 아득한 근원적 목마름을 ‘진실로’를 축으로 밝음과 어둠을 화해시키므로 갈증을 다스리게 하는 종교적인 거룩함까지 안겨 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일곱 줄의 지극히 절제된 소곡 안에 대단원의 생의 밑그림이 선명하게 다 담겨 있지 않은가.


<신달자·시인>


◆필자 약력=▶1943년 경남 거창 출생 ▶64년 ‘여상 신인여류문학상’ 받으며 등단 ▶시집 『봉헌문자』 『아가(雅歌)』 『아버지의 빛』 등 다수 ▶대한민국문학상·시와시학상·시인협회상 등 수상

2007.09.30 20:18 입력 / 2007.09.30 20:18 수정


‘무인도’ - 박주택(1959~)


우리가 서로에게 젖다 다시 홀로 스스로의 길로


걸어 돌아갈 때 언뜻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우면서도


삐걱거리는 외로움을 마음에 새겨두라


그 외로움의 성분에 곰팡이가 끼고 누룩 뜰 때쯤


어느 멀리서는 이기지 못하는 괴로움으로 횃불을 피우고


더 먼 곳에서는 유해들이 배를 깔고 탄식하는 소리로


적막하기 그지없는 밤을 채우기도 하니까


바깥에서, 높은 곳에서, 운명이 비웃으며


우리들에게 약속의 증서를 써주었던 손으로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창문으로부터는 봄에 머물렀던


나뭇가지들이 기어올라온다, 어리석게도


껍질이 벗겨지는 곳에서 강이 태어나고


기념비적인 죽음도 생겨나리라, 서서히 묘역에서는


사랑했지만 이별한 사람이 먹다 남은 빵이 노래에 싸여


굳어지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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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걱거리는 외로움을 마음에 새겨두자. 갇힌 자의 이별 시, 결의의 시. 찢어진 계약서와 상승하는 나뭇가지는 대칭을 이룬다. 우리에게 약속의 증서를 써준 손은 잎을 피우며 상승한다. 외로움만 다시 각인된다. 내게 남은 것은 이 철자들. 떠난 사람이 먹다 남긴 빵이 노래 속에 굳어진다. 잇자국이 남은 이 빵이 그의 마음이다.


고형렬·시인   2007.09.19 21: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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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연기나네’-이시영(1949~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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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디의 장미꽃’-마르스린느 데보르드-발모르(1786~1859).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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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이성복(1952~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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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체사레 파베세(1908~50).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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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파블로 네루다(1904~7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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